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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일반 Namjune Paik- Video Art in Liverpool -백남준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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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ACO (110.♡.13.161) 작성일 11-01-02 20:26 조회 14,81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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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Exhibition by
 
 
Namjune Paik
 
 
Liverpool, UK
 
 
3월 11일까지 영국 테이트 리버풀서 열리는 ‘백남준 회고전’ 을 말하다
01130917.jpg 1 1971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 모인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백남준, 백남준 작품의 기술담당 아베 슈야(사진 왼쪽부터). 사진 제공 테이트 리버풀. Nam June Paik Estate.
1984년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TV 앞에 앉은 중학생은 놀라운 영상을 보았다. 팝 가수·한국 고전 무용수·서양 탭댄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외국인들의 시 낭송과 울부짖는 듯한 몸짓을 현란한 편집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위성 생중계였던 이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 백남준의 ‘작품’이라는 사실, 단아한 몸짓으로 현대 무용을 보여준 사람이 세계적인 전위 무용가 머스 커닝햄이었고 모자를 쓰고 조끼를 입은 사냥꾼 같은 이가 독일의 개념 미술가 요셉 보이스였다는 사실 등은 모두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다.

01131011.jpg 2 백남준 회고전 광고가 부착된 테이트 리버풀 전시장 입구. 사진 윌 볼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품었던 비관적 예견을 향해 장난기 어린 윙크라도 하듯, 백남준이 보여준 것은 잔치와 축제, 그리고 아직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는 낙관적 시선이었다.
미술 이론을 공부하기로 결정도 하지 않은 시절에 그의 위성 프로그램이라는 혁신적 작품을 통해 미술의 ‘바깥’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테이트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되어 영국 최대 규모의 백남준 회고전이자 작가 사후 최초의 회고전을 여는 기회를 얻었다.한국인으로서 영국 대중에게 백남준을 소개하는 일은 폭넓은 문화적 이해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한국과 미국, 독일에서 백남준은 소개가 필요없는 ‘스타 작가’지만, 1988년 헤이워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외에는 꼽을 만한 전시가 없었던 영국에서 그는 미술 전문가들만 이해하는 ‘틈새 작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3년 가까이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백남준을 새롭게 ‘발견’하기로 작정했다.

01131048.jpg 3 3961 Aunt39(1986), 3962 Uncle39(1986), 3974 Route 6639(1993·사진 왼쪽부터)을 보고있는 관람객. 사진 로저 시넥. 4 전시장의 관람객들. 윌 볼턴.
독일에서는 연고 중심, 영국에서는 연대기 중심
나는 단순히 과거 지향적으로 회고전을 기획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남준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의 작가였으며 전위 미술을 대중화한다는 역설적인 슬로건을 현실화한 작가였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을 진보시키고 새로운 소통방식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그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기획안은 처음부터 동료 큐레이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이지만 유머와 휴머니즘이 풍부한 그의 작품들이 이 같은 예술에 생소한 관객 층에도 어필할 수 있고, 특히 테크놀로지에 민감한 젊은 층에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매력적이라고 여긴 듯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행위예술과 전위 음악에 대해 부각하고자 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욱 충실한 준비를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의 쿤스트 팔라스트 뮤지엄과 전시를 함께 열기로 했다. 이곳은 백남준이 수년간 후학을 길러낸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으로 작가 생전에 다양한 교류가 많았던 곳이다. 덕분에 독일 미술관 및 개인 소장자들의 도움을 받아 1950년대 말과 60년대 독일에서 열린 그의 음악회, 퍼포먼스, 전시에 관한 희귀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독일 미술계와는 깊은 연고를 지녔지만, 영국 미술계와는 직접적인 교류가 적었다는 데 있었다. 독일 측 큐레이터 수잔느 레너트와 논의를 통해 같은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즉 뒤셀도르프에서는 작가의 다양한 연고를 활용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다른 작가들이나 컬렉터들과의 교류에 주목했다. 반면 테이트 리버풀 전시는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시작해 행위예술,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등을 연대기적이면서 주제별로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 실험정신은 두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부분이다. TV·비디오·레이저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새로운 ‘미술 언어’를 찾고자 한 지속적인 노력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형식과 양식에도 결코 실험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01131105.jpg 5 ‘77 TV Buddha39 Falckenberg Collection, Hamburg. 39 Nam June Paik Estate.
기술과 예술의 만남, 음악과 영상의 조우
백남준의 조각· 설치·드로잉·판화 등 90여 점과 다큐멘터리 사진·도록·브로슈어·포스터·서신 등 120여 점을 테이트 리버풀의 1층과 4층에 나누어 배치했다. 또 ‘레이저 콘’(2001) 등 일부 작품은 국제적 미디어 아트센터인 FACT에 설치했다. 우선 테이트 리버풀 갤러리의 현관은 로봇 작품 이미지가 담긴 커다란 현수막으로 장식했다. 1층에는 가장 큰 멀티스크린 작품(52대의 스크린이 웅장하게 서 있는 1994년작 ‘인터넷 드림’)과 요셉 보이스와의 공동 퍼포먼스 작품, 유일한 회화 작품 등을 전시해 관객들이 그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몄다. 1971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 개인전에 참석한 존 레넌과 오노 요코와의 사진은 특히 레넌의 고향인 리버풀 관객에게 훨씬 친밀하게 다가갈 터였다.

4층은 초기의 퍼포먼스-TV 조각-비디오 설치 등으로 이어지는 백남준 예술의 성장과 전개 과정을 몇 가지 섹션을 통해 연대기적으로 구성했다. 첫 섹션 ‘음악-이후’에서는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시작된 초기 작업을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피란해 도쿄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청년 백남준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아널드 쇤베르크 같은 전위적 음악가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 이로 인해 독일 유학이 시작됐고 그곳에서 칼하인즈 스톡하우젠, 존 케이지 같은 당대 최고의 전위 음악가들을 만났다는 점을 각종 사진·공연 기록·편지 등을 통해 조명했다.

사실 백남준의 음악관은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연주회를 시작하고 4분33초 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종료를 선언한 ‘4분33초’ 같은 작품에서 보듯, 케이지의 음악 세계는 소음이나 침묵 같은 음악의 범주에 들지 않았던 요소를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케이지와의 만남 이후 백남준은 선불교 등 자신의 동양적 문화 배경을 재발견하게 됐고, 이러한 미적 깨달음을 당시 발전하던 테크놀로지와 결합시키는 자신만의 혁명을 이루어낸 것이다.63년 독일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미술가로서의 백남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서의 백남준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전시였다. 이번 전시에는 이 전시에 출품됐던 ‘임의 접속’ ‘선을 위한 TV’ 등을 비롯해 ‘조작된 피아노’도 두 대나 마련했다.

또 60년대 초 미국인 조지 마추나스에 의해 설립된 플럭서스(Fluxus) 운동과 백남준의 관계, 백남준이 일본의 기술자 아베 슈야와 함께 개발한 ‘비디오 신서사이저 1969’(1992), ‘자석 TV’ ‘TV 의자’ ‘TV 부처’ 등 본격적인 실험 TV 연작들, 외설 논쟁마저 부른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의 전위적 퍼포먼스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전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달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TV다’(1965)라는 초기 작품이다. 인간의 달 착륙이 임박한 때에 처음 만들어진 이 작품은 초승달부터 보름달, 그믐달로 이어지는 달의 주기를 다루지만, 달의 실제 이미지가 아니라 TV브라운관의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을 담고 있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방 안에 나란히 놓인 TV를 통해 달빛같이 잔잔한 빛이 흐른다. 그 아름다운 서정성이야말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눈부시게 성취한 백남준 예술의 정수가 아닐까.

“백남준이 왔다” “꼭 보아야 할 전시”
크르스토프 그루넨버그 테이트 리버풀 관장은 “이번 전시는 비디오 미술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넘어, 백남준이 지닌 역사적 중요성과 선구자적 예술적 비전을 발견하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개막 직후부터 영국 주요 언론들은 이 전시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인디펜던트’지는 이 전시를 “반드시 보아야 할 전시”라고 언급하고 테크놀로지와 커뮤니케이션의 급속한 진화에 병행한 백남준이라는 작가의 선구자적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가디언’지의 미술평론가 에드리언 설은 전시장 방문기를 쓰면서, 텔레비전 자체가 구식의 테크놀로지로 전락하고 첨단 기술의 상징이었던 레이저마저 장식적인 도구로 인식되는 오늘날, 백남준의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재치가 넘치면서도 뇌리를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백남준의 최대 명작으로 ‘TV 부처’를 꼽았다.

또 ‘옵저버’는 “백남준이 드디어 영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회고전의 기회를 갖게 됐다”고 전하면서, 뉴 미디어에 대한 그의 폭넓은 예견이 꾸준히 현실화되고 있는 점, 2500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객을 기록한 위성 방송 프로젝트의 역사적 의미 등을 높게 평가했다. 한편 ‘텔레그래프’지는 “세계의 관심을 비디오 아트로 돌린 선구자”라고 백남준을 소개하면서 그가 유튜브(YouTube) 세대의 성자와 다름없다고 평했다. 살아있으면 올해로 일흔아홉이 됐을 백남준. 지금 우리 시대의 예술을 보았다면 또 뭐라고 일갈했을까.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전쟁과 이민의 짐을 안은 청년으로, 전위 예술의 첨단을 걸었던 대표 작가로, 비디오와 미디어 아트의 대부로 거듭 변신해온 백남준이, 미래에도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좌표가 되는 데 이 전시가 도움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출처: 중앙일보
이숙경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나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영국 시티대에서 석사, 에섹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테이트 미술관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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