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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일반 Namjune 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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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ACO (110.♡.12.212) 작성일 09-12-31 05:04 조회 11,6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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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JUNE  PAIK
 
10th ranks among the great deceased artists
 
백남준, 위대한 작고 작가 중 10위
 
독일 마나거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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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최근 독일 잡지인 '마나거마가진'에 의해 위대한 작고 현대미술 작가 10명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이 잡지는 현대미술 작가 중 위대한 작고 작가 1위에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1987)을 선정했으며 이어 독일의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1921~1986. 2위), 미국의 솔 르윗(1928~2007.5위), 도널드 저드(1928~1994.7위),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9위) 등에 이어 백남준을 10위로 선정, 발표했다.

한편, 이 잡지는 1970년 이후 40년간 활동을 근거로 해 위대한 생존 작가 1위로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선정했으며 5위권 안에는 브루스 나우만과 지그마르 폴케,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이 포함했다.

이어 여성 조각가인 루이스 부르주아(6위), 올라퍼 엘리아슨(9위), 신디 셔먼(8위), 안젤름 키퍼(11위), 데미언 허스트(14위), 사이 톰블리(15위), 재스퍼 존스(18위), 제프 쿤스(19위) 등이 20위권 안에 들었다. (연합뉴스)
 
백남준
경성부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자본가인 백낙승이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양 고전 음악 피아니스트로 교육받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백남준과 가족은 한국을 떠나 홍콩으로 갔다. 그 후 일본으로 가, 도쿄 대학 문과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음악사를 공부하였다. 졸업 논문으로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관한 글을 작성한다.
졸업 후 백남준은 독일로 건너가 뮌헨 대학교에서 다시 음악사를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볼프 보스텔을 만나면서 백남준은 전자적 예술로 방향을 틀었다. 스톡하우젠과 케이지와 함께 전자 음악에 관한 작업을 하였다.
케이지에 영감을 받은 백남준은 일상의 소리와 소음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드는 등, 플럭서스와 같은 네오 다다 미술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 즈음 자기 공연에 찾아온 스승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얼마 뒤 백남준의 피아노 전시회에 케이지가 찾아와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퍼포먼스를 해서 복수했다는 일화도 있다. “음악-일레트로닉 텔레비전의 폭발”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텔레비전과 자석을 이용하여 왜곡된 화면을 만들어냈다.
1964년 백남준은 뉴욕으로 이동하여, 서양 고전 음악 첼로 연주자 샬롯 무어만과 함께 비디오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의 작업에 착수했다.
낡은 전자제품으로 작품을 꾸미는 것을 즐겨했다.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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