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일반 팡리쥔 Solo Exhibition-광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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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ACO (110.♡.12.212) 작성일 09-12-15 04:37 조회 9,906회 댓글 0건본문
Avant-garde Artist
CHINA
Awaken China Contemporary Art
The richest artist in China
대머리 건달의 야유 중국 미술을 깨우다
아트 파워 1위의 스타, 팡리쥔 개인전 가보니
| 광저우 광둥미술관에서 11일 개막한 개인전 ‘팡리쥔:시간의 실마리’ 전시작 앞에 선 팡리쥔. 어린 시절 연못에 빠져 익사할 뻔한 아픈 기억이 있는 그는 1990년대 들어 물속에 든 여러 형태의 자화상 연작을 그리며 한 숨에 왔다 갔다 하는 생존과 실존의 고민을 표현했다. | |
“팡 라오스(팡 선생님), 저희와도 사진 찍어주세요.” “팡 거(팡 오빠), 저도 한 장 부탁해요.”
유명 연예인이 따로 없다. 그는 화가이면서 스타였다. 지난 주말 중국 광저우시 한복판의 섬 얼샤타오(醫붸島)에 있는 광둥미술관 1층 전시장. 11일 개막한 ‘팡리쥔 : 시간의 실마리’를 보러 온 청소년들이 마침 인터뷰 사진을 찍던 주인공 팡리쥔(46)을 둘러쌌다. ‘F4다’라는 속삭임도 들려왔다.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4명 꽃 미남 주인공에 빗대 잘나가는 중국 현대미술가 4명을 이르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팡리쥔은 2007년 ‘중국 당대 아트 파워’ 1위에 선정된 인물이다. 250×300㎝ 크기 작품 한 점이 평균 5억원에 팔리며, 베이징 등 전국에 걸쳐 레스토랑 6개를 동업하고, 따리 등 지역 몇 군데엔 별장 겸 작업실이 있다.
경기가 안 좋은 요즘 같은 때도 팡리쥔은 1년에 미술관에 들어가는 그림값만 60~70억원을 받는다. 돈 잘 벌고 성공한 대표사례로 중국 청소년들의 우상이 된 그에게 ‘당신 같은 화가 되기를 꿈꾸는 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
“남의 인생을 살아줄 수는 없다. 운도 따라야 한다. 열심히 살아라.” 작품 설명은 평론가에게 맡기고 과묵한 은유로 일관하는 그다운 대답이다.
2010년 1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자료전 성격을 띠고 있다. 팡리쥔의 오늘을 있게 한 바탕을 이 잡듯 뒤져 1958년부터 2009년까지 연도별로 전시장에 늘어놓았다. 신문·잡지·책·유인물 등 각종 인쇄물과 사진,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그린 스케치와 드로잉, 작가의 기사가 실린 다양한 매체 등 수 만 점에 달하는 자료가 모인 전시장은 ‘질린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방대하면서 촘촘하다. 4개 전시장에 액자만 1000개가 걸렸다. 팡리쥔의 오늘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역사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부모와 형님이 팡리쥔의 어린 시절부터 종이 한 장 버리지 않고 모았다는 그 정성이 징그러울 지경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12일 열린 세미나 ‘전 지구적 맥락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평가’는 열띤 토론으로 당대 중국 미술인의 고민을 엿보게 했다. 왕황셩 광둥미술관장, 뤼펑 중앙미술학원 교수 등 미술평론가와 미술사가들은 지난 30년 중국 현대미술의 궤적을 서양 사상과 시각으로 해석해온 잘못을 반성하고 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팡리쥔의 이번 자료전이 중국인의 눈으로 중국 당대 미술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것이다. ‘서구인의 개념과 언어를 도구로 중국 역사와 인간 속에서 숙성돼 태어난 미술을 풀이할 수는 없다’는 그들의 문제제기는 방청객의 큰 공감을 얻었다.
‘시간의 실마리’란 제목은 이런 다각도의 연구 속에서 나왔다. 팡리쥔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그들 손으로 실타래를 풀기 시작해 중국 당대 미술 전체로 해석을 넓혀가겠다는 의도다. 한국 당대 미술이 부러워할 것은 팡리쥔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가 아니라 바로 이 태도가 아닌가 싶었다.
광저우(중국)=글·사진 정재숙 기자
◆팡리쥔(方力鈞)=1963년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 태생. 자산계급(대지주)이었던 할아버지 탓에 5~15세에 겪은 문화대혁명 당시 출신 성분 불량자로 내몰려 고생했다. 팡리쥔의 아버지는 친구들의 모욕과 구타에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에 독선생을 모셔 그림공부를 시켰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판화과를 졸업하던 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지자 이에 분노해 비주류와 반항의 의미를 담은 대머리 건달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이자 성공한 미술가로 꼽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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