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안내 Wayne Gonzales곤잘레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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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ACO (219.♡.27.6) 작성일 08-09-24 04:48 조회 11,121회 댓글 0건본문
"He began to start to draw a serial work of crowds, as seeing the demonstration of Irac's war" |
- ▲ 웨인 곤잘레스의〈앉아있는 군중〉. 캔버스에 아크릴, 167.6×167.6cm, 2007년작. /서미갤러리 제공
곤잘레스는 특히 뉴욕 평단에서 주목 받는다. 그는 익명의 군중을 찍은 사진 수백 장을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뒤, 그 사진을 명암에 따라 3~4단계로 '해부'한다. 이어 푸른색이나 어두운 회색으로 바탕을 칠한 캔버스에 재빠른 붓질로 사진을 옮겨 그린다. 캔버스 코 앞에서 보면 군중 개개인은 희끗희끗한 얼룩에 지나지 않는다. 멀찍이 물러서면 비로소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곤잘레스는 "이라크 반전 시위를 지켜보면서 《군중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군중의 핵심은 규모에 있죠. 그런데 군중 속에 있을 때는 결코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외부에 나와도 마찬가지죠. 경찰은 반전 시위 군중 규모를 축소해서 세고, 반전 단체는 부풀려서 세니까요."
곤잘레스는 뉴올리언스에서 나고 자랐다.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는 검찰청 직원들과, 시칠리아 이민자 출신인 외갓집 식구들은 조폭들과 친했다. 여름이면 허리케인이 도시를 덮쳤다. 곤잘레스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엇갈리는 느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란 오늘 흥청거리다가도 내일 물에 잠겨 사라지는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 ▲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만난 미국 작가 웨인 곤잘레스는“관람객에게‘내 그림은 이런 뜻’이라는 주장을 들이미는 데 나는 이제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보다는 그들이 뭐라고 이해했는지 듣고 싶어요. 내가 얼마간 완숙해진 게지요.” /이준헌 객원기자
그는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회계사 시험,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려다 차례로 중도 포기했고, 또다시 포스터 공장에 3년간 근무하다 미대에 진학했다. 뉴욕으로 떠났을 때 그는 서른이었다. "이른 나이는 아니었죠. 하지만 도중에 멋대로 흘려 보낸 시간 5년쯤을 '안 살았다'고 치기로 했어요. '남이야 뭐라건 나는 아직 25세'라고 생각하며 뉴욕으로 갔어요."
그는 "(젊어서는) 그림 그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自問)하곤 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사변적인 문제에 대해 옛날처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린다. '계속 그리는 것'이 최선의 해답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인지 모른다.
"한번은 뉴욕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어떤 학생이 '선생님 그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냐'고 물었어요.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학생이 '아무 영향도 못 줘요' 라고 하데요. 나로선 그 학생이 틀렸기를 바랄 밖에요." 전시는 10월 18일까지. (02)3675-8232
그는 "(젊어서는) 그림 그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自問)하곤 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사변적인 문제에 대해 옛날처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린다. '계속 그리는 것'이 최선의 해답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인지 모른다.
"한번은 뉴욕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어떤 학생이 '선생님 그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냐'고 물었어요.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학생이 '아무 영향도 못 줘요' 라고 하데요. 나로선 그 학생이 틀렸기를 바랄 밖에요." 전시는 10월 18일까지. (02)3675-823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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