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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일반 백남준의 ‘손’은 오늘도 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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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on (58.♡.1.39) 작성일 06-02-16 12:38 조회 8,41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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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없으면 이땅에 널린 거장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들은 조만간 작동을 멈출지도 모른다. “제 직업요? 글쎄, 텔레비전 왕창 부수고 뜯는 전문가랄까요. 하하… 멀쩡한 티브이 수천대를 뜯어서 엉뚱한 몰골로 뒤틀거나 괴짜 영상을 만드는 일만 20년 가까이 했지요. 그 어른이 시도때도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면 감 잡아서 만드는 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

■ 비디오아트 제작 달인 이정성씨

거장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제작 조수(어시스턴트)로 그와 18년간을 동고동락한 텔레비전 기술자 이정성(62·아트마스터 대표)씨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는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손꼽는 비디오 아트 작품 제작의 달인이다. 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형 비디오 탑 <다다익선>을 만든 이래 백남준의 저명한 미디어 아트 대작 대부분은 그의 손아래서 나왔다. 거장의 명성 뒤에 가려졌지만 백남준의 지인들은 눈빛만 보고도 작업 컨셉을 이해할 수 있던 가장 절친한 작업동료로 이씨를 기억한다. 서구기술자들도 혀를 내두르며 포기한 고난도의 브라운관 영상조작은 그만의 특기다.

“백 선생 타계 뒤 이 사람 저 사람 다 고인의 작업들을 많이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싱긋 웃었어요. 알아주는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비디오아트 기술자 1호라는 자부심,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그분과 함께 했던 행복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의 작업장을 찾은 지난 10일 오후에도 이씨는 백남준 유작 설치에 열중하고 있었다. 광명시에 들어선 초대형 경륜장 스피돔 구내 라운지에 올림픽 미술관 소장품이던 고인의 설치영상 <금관>을 옮기는 일이었다. 백제 금관을 형상화한 꼭대기 조형물과 40여개의 모니터가 달린 원통형 몸체, 금속 받침대로 이뤄진 높이 4m의 대작 앞에서 그는 아래쪽 구리 배선을 칼로 뜯고 있었다. 희끗한 눈썹의 이 티브이 장인은 후덕한 동네 전파상 아저씨 같다. “고인에 정통한 미술인들 나두고 왜 나를 찾아왔느냐”고 그는 구수하게 웃었다.

백남준과 18년 동고동락
‘다다익선’ 한달반동안 죽을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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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거장처럼 백 선생도 괴짜였어요. 새벽 2~3시에 작품 구상하고 오밤중에 국제전화를 뜬금없이 걸어요. ‘정성이, 금방 생각난게 있는데, 요런 것 좀 만들 수 있어’하고 묻죠. 생각나는대로 작업얘기를 다 풀어놓고는 ‘할 수 있지?’하고 물어요. ‘예’하면 끝이죠. 제 기억에 그분 물음에 다시 되묻고 한 적이 없어요. 한마디 하면 무슨 말인지 감을 잡았죠. 그 뒤에 제가 알아서 대충 설계하고 시작품을 만들고 최종응낙을 받는 거지요. 간단한 말만해도 서로 통하니까 그분도 편안했던가봐요.”

작업중인 <금관>은 2004년 국내에 남긴 최후의 유작이다. 백제 문화와 첨단 디지털 영상의 만남을 상징한 설치작업은 40여개의 모니터에 영상을 배분하는 전자기기와 전력 공급장치, 전기선 등이 내부에 얽혀있는 전자 조형물이다. 설치는 까다롭다. 영상을 시험가동하고 전력 공급 상황을 계속 살펴야한다. 회선 설치, 작동 시험, 영상신호 점검 등의 작업 공정을 마치는 데만 최소 이틀 이상이 걸린다. 배전함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눈이 날카롭게 작품 위아래를 두루 훑었다.

경기도 양평 벽촌 출신인 그를 세계적 장인으로 만든 밑천은 세운상가 등의 전파상에서 쌓은 토종 기술이었다. 61년 중학을 졸업한 뒤 신문에서 텔레비전 기술 학원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곧바로 상경해 학원에서 처음 텔레비전, 전축 조립 기술을 배웠다. 누님이 살던 영등포에서 을지로 학원까지 걸어 통학하면서 밤새도록 마냥 티브이와 전축 라디오를 뜯고 고쳤다. 그렇게 쌓은 기술로 80년대 세운상가에 중고티브이 수리상을 운영했던 그는 86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때 삼성관에 500여대의 모니터 벽을 세우는 작업을 마치면서 백남준과 알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1003대의 모니터로 이뤄진 <다다익선>을 구상중이던 백남준이 삼성의 추천을 받아 작업 적임자로 점찍은 것.

“<다다익선>은 시간이 촉박해 한달 반 동안 죽을 고생을 했지요. 영상을 각 모니터에 나눠주는 영상 분배기는 국산이 없어 제가 직접 만들었지요. 완공식날 전원을 넣을 때 차질 없이 1003개의 화면에 모두 영상이 다 들어오는 순간은 제게 가장 기뻤던 순간일 겁니다. 그 뒤부터 백 선생이 뭉텅이 작업들을 계속 맡기더군요. 일년중 반은 해외에서 그와 함게 일하다보니 자연스레 말벗이 됩디다.”

전파상에서 기술 익혀
텔레비전 수천대 뜯고 주물러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93년 백남준에게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겨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출품작들. 빔 프로젝트, 비디오 월, 몽골 텐트로 이뤄진 이들 설치작업은 모두 국내에서 그가 제작한 회심작들이었다. 90년대 초 휘트니 미술관 근작전과, 91년 취리히 현대미술관 백남준 회고전, 뉴욕 스미소니안 미술관,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등지의 설치작업들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컨셉을 완성하는데만 2년 이상 걸린 <메가트론>(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이 유난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껍데기를 벗겨 개조한 텔레비전 수상기만 3000대가 넘습니다. 정말 원 없이 텔레비전 수상기를 뜯고 주물렀지요. 때려잡은 ‘테레비’만 수천대에 달하니 티브이 귀신들이 날 따라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장은 갔어도 그가 남긴 일감은 줄줄이 그를 기다린다. 국내에 흩어진 백남준의 대작들만 해도 대부분 그가 있어야 관리가 가능한 수제작품들이 많다. 5월 착공할 용인 백남준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과 세종문화회관의 <티브이 첼로>, 올림픽 미술관에 남겨진 최후의 유작 <쿠베르탕>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뉴욕 장례식장에 갔더니 선생의 작품을 소장한 외국 미술관 기획자와 컬렉터들이 앞다퉈 관리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더군요. 정신이 번쩍 났어요. 선생의 유작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 외엔 달리 바람도 없습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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